브레히트가 1939년 3월에 작업에 착수해 1941년 1월에 완성한 『사천의 선인 (Der gute Mensch von Sezuan)』은 내용적, 극형식적으로 동양 문학, 철학과 산스크리트극 형식을 융합한, 대표적으로 성공한 작품 중 하나다. 1930년 초에 완성되었던 초안 『상품 사랑 (Die Ware Liebe)』을 망명 초부터 깊이 연구해오던 동양극 형식, 특히 산스크리트극 형식, 중국시와 철학을 총동원해 무대를 중국 사천으로 가져가 동·서양 문화, 철학, 문학과 연극론을 총체적으로 융합시켜 완성한 작품이다.
앞서 이미 살펴본, 스테핀이 앓아눕자 『사천의 선인』을 중단하고 시도했던 미완성작 『시모다항의 유디트』와 『공자의 생애』와는 달리, 브레히트는 자신이 추구한 모든 동양적 형식과 요소들을 이 완성작에다 이전하고 융합시켰다. [1]
서사극적 형식들은 칼리다사 『샤쿤탈라』를 바탕으로 1934년 개작해 1936년 완성한 『둥근 머리와 뾰쪽 머리』의 서사적 형식을 미완성 작품에서 다양하게 시도한 뒤에 『사천의 선인』에서 최종적인 시도를 했으며, 『메티 소설』 집필을 위해 중국시 (백거이와 다른 시인들)와 철학 (노자, 묵자, 공자, 장자 등)을 연구했던 내용들을 『사천의 선인』 등장인물들 대사에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
브레히트는 서구인들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창세기 18장 이야기를 작품 전체에 기본 주제를 잡았다. 세 천사를 집으로 맞아 대접한 아브라함, 이를 통해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고령의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 이삭을 얻으며 더 나아가 아브라함은 천사들과 중재를 통해 ‘의인 열 명이라도 있으면 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이야기다. 이 기본 모티브에 동양적인 옷을 입힌 것이 바로 『사천의 선인』이다. 더 나아가 브레히트는 이 2번째 장면, 담뱃가게에서 자신이 번안해 망명 잡지 『말』에 발표한 월리의 중국시 한 편을 슈이타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인용하게 한다.
슈이타 어쩜 그대가 옳아요. (목수에게): 불행은 이 도시 궁핍이 한 인간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큰 사실에 놓여있오. 슬프게도 이런 궁핍에 있어서 누군가 다음 4행시를 쓴 이후로 천 백년 세월 속에 전혀 변하지 않았소:
성주는 자문을 구했지, 무엇이 필요한지
추위에 떠는 도성 백성들을 돕기 위해, 대답은:
일만 척 길이의 이불
전체 성변두리를 간단히 덮을. (GBA 6, 196)
백거이 시 - 新制綾襖成感而有詠 (신제릉오성감이유영)
슈이타가 앞 대사에서 인용한 시는 원래 연구에서 잘 알려진 것처럼, 백거이 시인의 시 “新制綾襖成感而有詠 (신제릉오성감이유영 - 새로 지은 비단옷이 다 만들어져서)“이란 시 후반부 6행 내용과 관련 있다.
百姓多寒無可救 (백성다한무가구)
一身獨煖亦何精 (일신독난역하정)
心中爲念農桑苦 (심중위념농상고)
耳裏如問飢凍聲 (이리여문기동성)
爭得大裘長萬丈 (쟁득대구장만장)
與君都蓋洛陽城 (여군도개낙양성)
추위에 떠는 백성이 많아도 구해줄 사람 없어
홀로 따스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마음으로 농부들 힘든 농사일 생각하고
귓전에 배곯고 떠는 원망소리 들려오니
언제 만길 길이 따뜻한 옷 장만해
그대와 더불어 낙양성 덮어줄 수 있으려나.
월리는 백거이 해당 시 전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앞에 소개한 후반부 6행을 『The Big Rug』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4행으로 압축해 번역했다.
That so many oft he poor should suffer from cold what can we do to prevent?
To bring warmth to a single body ist not much use.
I wish I had a big rug ten thousand feet long.
Which at on time could cover up ervery inch of the city. [2]
브레히트는 월리 번역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번안해 1938년 망명 잡지 『말』에 『이불』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불
성주는 나로부터 자문을 받았네
추위에 떠는 도성 백성을 돕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대답은: 일만 자 길이 이불
전 변두리 도성을 간단하게 덮을.
Die Decke
Der Gouverneur, von mir befragt
Was, den Frierenden unserer Stadt zu helfen, nötig sei
Antwortete: Eine zehntausend Fuß lange Decke
Welche die ganzen Vorstädte einfach zudeckt. [3]
『사천의 선인』에서 슈이타 입을 통해 인용하게 한 이 시와 1938년 망명 잡지 『말』에 발표한 시와 비교하면, 브레히트가 이미 번안한 시를 수정하고 보완했음을 알 수 있다. 1951년 하우프트만과 함께 다시 한번 수정을 통해 23번째 『시도』에 발표한 시는 또한 앞의 두 시와 다르게 수정했음을 알 수 있다. 늘 그래왔듯이 브레히트는 처음 발표한 이 시를 계속 수정하고 보충했던 것이다.
큰 이불
성주는 내게서 자문을 받았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추위에 떠는 성내 백성들을 돕기 위해
대답은: 한 이불, 길이 일만 자인
전 변두리 성을 간단하게 덮을
Die grosse Decke
Der Gouverneur, von mir befragt, was nötig wäre
Den Frierenden in unsrer Stadt zu helfen
Antwortete: Eine Decke, zehntausend Fuß lang
Die die ganzen Vorstädte einfach zudeckt. [4]
장자 (莊子) 내편에서 인용한 “유용성의 고난 (材之患)“
브레히트 자신이 직접 번안한 백거이의 시를 수정해 희곡 운문 대사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6번째와 7번째 장면 사이 막간극에서 서구극에 흔히 등장하는 성경을 읽으며 인용하는 것처럼, 물장수 왕의 숙소에서 브레히트는 “가상의 책“ 즉, 장자 (莊子, 기원전 369-기원전 286) 『남화진경 Die Wahre Buch vom südlichen Blütenland』[5]을 등장시켜 “장자 내편 4장 인간세 6“을 그대로 인용하게 한다. [6]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에서 물장수 왕서방이 신들 앞에서 빌헬름 번역 그대로 한자도 틀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또박또박 낭독하게 하고 있다.
왕 나리들이 오시니 좋습니다! […..] (왕이 품에 안고 있는 책 위에 가상의 책을 왼손으로 넘기고, 실제 책은 그대로 놓여있는 동안, 왕은 이 가상의 책을 읽고자 높이 든다.)
“송나라에는 가시숲이라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 개오동나무, 실측백나무와 뽕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그런데, 둘레가 한두 뼘되는 나무는 개집 제목으로 쓰려는 사람들이 베어간다. 둘레가 서너 뼘되는 나무는 귀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관 널판으로 쓰고자 베어간다. 둘레가 일곱 여덟 뻠되는 나무는 호화판 별장의 대들보로 쓰려는 사람들이 베어간다. 이렇게 나무들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톱과 도끼에 벌목된다. 이것이 바로 ‘유용성의 고난‘인 것이다.“ [7]
브레히트는 왕서방의 입을 통해 『남화진경』, “유용성의 고난“ (IV 인간세, 6)의 앞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낭독하게 하는데, 빌헬름이 독역한 뒷부분 내용,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과 관련된 비유는 생략하고 있다. 빌헬름 번역과 한자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학 내지 중국 철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내용 출처를 밝히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독역판을 세심하게 읽었다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빌헬름 번역도 중국 원문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출처를 “장자 내편, 제4장 인간세, 6“으로 분명하게 분류하고 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연구자들이 30여년이 넘도록 브레히트가 인용한 장자 텍스트 출처를 “내편, 3장 양생주 (養生主)“라 믿고 계속 주장함으로써 후학들이 제대로 확인 없이 재인용하는 실정이다.[9]
앞에서 브레히트가 인용한 텍스트, 빌헬름 번역본과 장자를 비교한 것처럼, 텍스트 출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해당 내용은 빌헬름의 『남화진경』, “BUCH III, Pflege des Lebensprinzips (3장 양생주)“가 아니라, “Buch IV, In der Menschenwelt (4장 인간세, 6)“의 비유 내용이다. 즉, 임한순이 출처로 주장하는 “材之患 (제지환)“ 비유는 빌헬름 번역에는 물론이고, 중국어판 장자에도 없으며 한국어판 장자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한순 선생이 단순한 실수로 기인한 주장이 수정되지 않고 계속 국내에서 인쇄되어 보급되고 있다. 이것은 출처를 최초 언급하고 발표한 연구자가 스스로 장자는 물론 빌헬름 『남화진경』도 직접 읽고 확인하지 않았거나 내용 자체를 전혀 모르고 주장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레히트가 왕서방이 낭독하는 장자 텍스트는 바로 빌헬름이 “장자 내편, 제4 장 인간세, 6“의 내용을 독역했으며 이것을 브레히트가 번역서 내용 그대로 『사천의 선인』에서 물장수 왕서방이 낭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장자(내편) 第4篇 人間世 (인간세) 6
宋有荊氏者 (송유형씨자),宜楸、柏、桑 (의추, 백, 상)。
其拱把而上者 (기공파이상자),求狙猴之杙者斬之 (구저후지익자참지);
三圍四圍 (삼위사위),求高名之麗者斬之 (구고명지려자참지);
七圍八圍 (칠위팔위),貴人富商之家求樿傍者斬之 (귀인부상지가구선방자참지)。
故未終其天年 (고미종기천년),而中道已夭於斧斤 (이중도이요어부근),
此材之患也 (차재지환야)。
故解之以牛之白顙者 (고해지이우지백상자),與豚之亢鼻者 (여돈지항비자),
與人有痔病者 (여인유치병자),不可以適河 (불가이적하)。
此皆巫祝以知之矣 (차개무축이지지의),所以為不祥也 (소이위불상야),
此乃神人之所以為大祥也 (차내신인지소이위대상야)。
송(宋)나라에 형씨(荊氏)라는 땅이 있는데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토질(土質)에 맞았다. 그중에서 둘레가 한두 아름 이상 되는 것은 원숭이 말뚝감을 찾는 사람이 베어가고, 서너 아름 정도로 자란 나무는 높고 큰 집의 대들봇감을 찾는 사람이 베어가고, 일곱 여덟 아름 정도로 자란 나무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부유한 상인의 집 관 옆에 붙이는 널판목을 찾는 사람들이 베어간다. 그 때문에 제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도끼와 자귀에 의해 일찍 죽게 되니 이것이 쓸모 있음으로 인해 초래되는 재앙이다.
그런데 액운을 쫓는 제사에, 이마에 흰 털이 난 소와 들창코인 돼지와 치질 있는 사람은 제물로 적당치 않아 강물에 던지지 않는다. 이것을 모든 무당이나 축관들이 이미 알고 있어 그것들을 상서롭지 않은 물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도(道)를 체득한 신인(神人)이 크게 상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출처: 장자 내편. 제4장 인간세, 6)
브레히트가 왕서방에게 낭독하게 한 빌헬름의 장자 『남화진경』 해당 텍스트 번역과 장자 내편 한자 원문과 비교해보면, 빌헬름이 장자의 원문에 충실해 독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빌헬름은 장자의 한자 원전을 비교·확인할 수 있도록, 장자 원전의 편과 장을 그대로 중국 원전처럼 명기하고 번역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출처를 최초로 밝힌 독일 독문학자의 문제가 아니라, 브레히트와 동양철학을 연구한 임한순 선생이 논문이나 작품해설에서 “장자, 내편 3장 양생주“에 나오는 “材之患 (제지환)“이라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밝힌 사실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임한순 선생은 정작 양생주에 그런 내용이 실제로 있는지 직접 확인조차도 하지 않고 제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와 오류는 빌헬름 독역 『남화진경』과 장자 내편, 인간세 (人間世)를 제대로 한번 확인했다면 결코 생길 수 없는 결과이며 이런 연구의 오류를 후학들이 재인용하는 오류가 국내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백거이와 장자와 관련된 내용이외에도,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에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공자, 노자와 묵자 등을 읽고 이해한 내용들은 물론이고, 성경과 다양한 서구문학 내용들을 인용해 동양적 내용들과 융합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브레히트는 『사천의 선인』에서 동·서양의 모든 가능한 서사적 형식, 문학과 철학적 내용들을 이전하고 융합한 결과로 서양인들은 물론이고 동양인들도 희곡 내용과 극형식을 수용하기에 무리가 없는 성공적인 서사극을 완성했다.
[1] 필자의 논문, “서사극의 참뿌리“ 서울 2019과 eBook “브레히트 현대 서사극과 칼리다사 『샤쿤탈라』 서울, 2020년 참조. [2] Arthur Waley: A Hundred and Seventy Chinese Poems. Lodon 1919. 228쪽 [3] GBA 11, 257. [4] GBA 11, 261. [5] Richard Wilhelm: Dschuang Dsi. Die wahre Buch vom südlichen Blütenland. Jena 1923. [6] 위의 책, 35쪽. 이 내용은 빌헬름의 독역판 Buch IV (제 4장), In der Menschenwelt (인간세), 6 Das Leiden der Brauchbarkeit (유용성의 고난)이라고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브레히트와 중국철학“이란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서울대 임한순 교수는 자신의 역서 『사천의 선인』에서 “장자, 내편 3장 양생주“에 “材之患 (제지환)“ 비유라며 엉뚱한 출처를 제시하는 초보적인 문헌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임한순: 사천의 선인, 서울 (한마당) 1987년. 291쪽 비교. 애석하게도 2006년 서울대학교 인문학 총서로 발간한 “브레히트 희곡 선집2“에서도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채로 이전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 [7] GBA 6, 196. [8] Wilhelm: 앞의 책 25쪽. Buch IV, In der Menschenwelt [9] 임한순 선생은 20여년이 지난 뒤인 2006년 서울대학출판부에서 펴낸 “브레히트 희곡 선집 2“에서도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다. 한국 브레히트 학회에서 펴낸 희곡 선집 3에서 해당 작품을 번역한 정민영 선생은 학회 원칙에 따라, 따로 해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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