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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정권에 수난당한 브레히트 『시 백선』

최종 수정일: 8월 21일



1951년 초판을 출간했던 아우프바우 (Aufbau) 출판사는 브레히트100주년에 맞춰 1998년에 기념판으로 브레히트 『시 백선 Hundert Gedichte 1918-1950』을, 1988년부터 새전집 (GBA)을 출간하던 쥬르캄프 (Suhrkamp) 출판사에서 사장 운젤트 (Unseld)가 특별히 선별한 『시 백선 Hundert Gedichte』 (1998년)[1]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원래 브레히트 『시 백선』은 15여년 망명 끝에 동베를린으로 귀국하자, 망명시절이었던 1938년 런던 말릭 (Malik) 출판사에서 2권짜리 전집을 편집했던 헤르츠펠데 (Wieland Herzfelde, 1896-1968)가 1951년 동베를린 아우프바우 (Aufbau) 출판사의 편집자로 기획한 브레히트 시집이었다.

이 시집은 문학사에서는 물론이고 독일 출판사상 단행본 시집으로서 대성공한 시집에 속한다. 이 시집만 백만 부 이상 팔렸고, 브레히트는 이 시집을 통해 독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연극사에서 »서사극의 창시자« 이상으로 『시 백선』을 통해 시인으로 유명해졌다. 이를 통해 이 시집이 발간된 이후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인, 법조인과 지식인들은 알게 모르게 브레히트 시를 매일 일상에서 인용했던 것이다.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브레히트 단행본 시집으로 백만 부 이상 독자들을 확보했고, 이 시집은 물론 국경과 언어권을 넘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이 시집을 바탕으로 독문학자 김광규 시인이 1985년 『시 백선』 에서 47편을 번역해 한마당 출판사에서 출간한 시집이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이처럼, 브레히트 『시 백선』이 단행본 시집으로 성공을 거두자,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다른 시인들 시집들도 『시 백선』이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하고 있으며 다른 출판사들도 서로 다투어 다양한 작가들의 『시 백선』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브레히트 시집이 독일 출판계에 『시 백선』 출판 유행을 일으킨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시 백선』에 대한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브레히트 『시 백선』이 과연 몇 편 시들로 구성되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와 동시에 "브레히트 『시 백선』이 동독치하에서 과연 온전했을까?"라는 물음에 답해보고자 한다.



시집 명칭 - 『시 백선』과 표지로 생긴 수난



헤르츠펠데가 『시 백선』의 부제를 “1918-1950“이란 연도를 제한하고 있듯이 양차 세계대전이란 암울한 시대에 쓰인 브레히트 시를 담고 있다. 그런데, 당시 동독, 동베를린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사회주의“의 승리이자 이런 이념에 따른 사회주의 건설에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칫 브레히트 시가 동독 공산당에 이용당하거나 거부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이런 우려를 헤르츠펠데는 편집 후기[2]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동시에 브레히트의 시작 의도와 확신에 따라 “여명이 밝아 오리니“ (GBA 11, 115)[3]와 “문학은 연구되어 질 것이다“ (GBA 14, 433 f.)[4]는 소망으로 시들을 선별하고 『시 백선』으로 묶어 출간했다.


그런데, 『시 백선』이라는 시집 명칭이 브레히트 이전에 독일 문학에서 없었다는 점에서 출발해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연 브레히트가 접했던 월리 (Arthur Waley, 1889-1966)의 번역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월리가 중국 한시를 번역한 뒤에, 『중국시 170선 A Hundred and Seventy Chinese Poems』과 『중국시에서 더 많은 번역 (MORE TRANSLATIONS FROM THE CHINESE)』을 1918년 런던에서 초판을 출간했으며, 곧바로 뉴욕에서 문고판 (1918년)을 이듬해인 1919년 5월에 두 시집의 장정판과 초판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 전집 해설 (GBA 22, 1046)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 『중국시 170선』 (뉴욕판 1938년 본)을 유고도서관에 남기고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중국시를 번안했다. 이런 연관선상에서 브레히트 『시 백선』이라는 시집 제목이 월리의 『중국시 170선』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일은 그리 무리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브레히트가 당시 동베를린 아우프바우 출판사 편집인 헤르츠펠데 (Wieland Herzfelde, 1896-1968)에게 1950년 5월에 보낸 편지 (Nr. 1491, GBA 30, 26f.)에서 브레히트 자신이 『시 백선』이라는 명칭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 백선』이라는 책 제목에 찬성했거나 이야기가 이미 끝난 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편집인에게 시 선정을 일임하고 있으며, 단지 편집될 시들에 내용에 대해 언급만 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와 편집자는시집 명칭에 서로 별 이의 없이 합일점을 찾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형식주의적이란 비판으로 두 가지로 인쇄된 초판 표지

하지만 당시 동베를린, 즉 동독에서 형식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는데, 헤르츠펠데 친형인 존 허트필드 (John Heartfielde, 1891-1968)가 “중국 차나무 뿌리 사자상“으로 제시한 표지 디자인과 이 디자인을 지원하고자 표지 뒷면에 인쇄할 브레히트의 에피그람 시까지 출판사가 거부한 일을 겪게 된다. 즉, 표지 디자인에 맞춰 브레히트가 특별히 에피그람을 쓴 것이지만,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시와 표지 디자인이 형식주의 논쟁에 수난 당할 처지에 놓였던 셈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허트필트의 디자인이 전쟁전 사실주의 논쟁에 이어 전후 동베를린에서 불붙었던 형식주의 논쟁 (GBA 23, 134쪽, 1951년) 때문에 정작 아우프바우 출판사는 이 표지 인쇄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표지 문제로 논란 끝에, 결국 『시 백선』 초판은 반반씩 두 가지 상이한 표지로 인쇄되었다.[5] 그 이후 두 버전이 나란히 출간되었고 문고판들은 거부된 표지를 주로 수용했다.




통독전 기획된 100주기 기념 사업을 통해 새전집 (GBA) 출간으로 전집은 통일되었지만, 제목과 수록 편수만 같고 내용이 완전 다르게 출간된 두 출판사 『시 백선』 (1998년)

초판시 인쇄 거부했던 표지를 에피그람 시와 함께 표지로 택한 문고판 (1968년)



이렇게 초판의 표지 문제는 출판사 사상 보기 드문 두 가지 버전 표지의 동시 인쇄로 마무리 되었지만, 브레히트와 편집자는 물론 출판사까지도 『시 백선』이라는 시집 제목에 대한 의미를 엄격하게 다루지 않고 시집을 편집했기 때문에, 후일 동독 정권이나 공산당이 브레히트 『시 백선』에 개입할 또 다른 수난을 이미 시집 자체에 내포하고 있었다.




『시 백선』에는 몇 편 시를 담았을까?



편집인 헤르츠펠데는 1951년에 출간한 초판 시집 『시 백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총 일곱 카테고리 아래 100편이 아닌 총 111편의 브레히트 시를 선별했었다. 시집 제목이 애초에 의미하는 대로 엄격하게 시 100편만 수록했더라면, 후일 동독 정부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시 백선』에 개입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외부 정치적 개입은 의외로 빨리 왔었다. 즉 브레히트가 죽고 난 뒤인 1958년 소위 개정, 보증판에서 이런 개입은 명확해졌다. 애초부터 『시 백선』이 100편이 아닌 111편으로 출간되었지만, 브레히트가 죽고 1953년 9월 29일부터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브레히트 전집출판에 착수함으로써, 하우프트만이 전권을 가지고 좌지우지하던 시기였다. 이 당시 게재된 시 편수는 다음 도표와 같다.




브레히트가 죽고 난 2년 뒤이자 60주기인 1958년 『시 백선』 보증판이 나왔는데, 위의 도표처럼 111편이 갑자기 127 (128)편으로 16 (17)편이 추가되었다. 즉 “노래 /동요“에서 2편[6]을 추가했고, 11편이던 “독일 소외층들“을 “독일 전쟁교본“으로 바꾸고 13편 시를 추가했다.[7] 그리고 “망명시“ 제목 아래 “표제시“를 시로 여기지 않고 시 목록에서 삭제했다. 즉 실제로는 1958년 판에서는 초판보다 총 16 (17)편의 시가 추가된 셈이다.


1958년 판에서 무엇보다도 특기할 부분은 당시 동독 정권 아래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장이 바로 “팜플릿과 찬양가 Pamphlete und Loblieder“에 수록된 시들이다. 브레히트가 아직 살아있었더라면, 초판 발행을 위해 헤르츠펠데에게 “시집을 구성하는 자네 방식 말이지. 이 방식은 정말 훌륭한 방법인 게야“라고 칭찬했던 편지를 후회할 정도로 ‘당시 동독 정권의 입김이 직접 작용하지 않았을까?‘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왜냐하면, 시 편수로는 단2편의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초판과 비교해 보면, 무려 6편이 새로 추가되었고 초판 시를 4편이나 삭제했기 때문이다. 물론 “팜플릿과 찬양가“라는 카테고리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다른 시들을 끼워 넣기가 손쉬웠던 점이기도 하다.



1958년 증보판을 바탕으로 통일 2년전 다시 내놓은 『시 백선』 (1987년)

이렇게 동독 정권 아래 삽입된 내용이 후일 다시 초판에 실렸던 시들로 원복한 것이 바로 1998년 기념판인 것이다. 즉 1958년 보증판은 브레히트 사후에 동독 정권의 입맛에 따라 브레히트 『시 백선』이 출간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회복시킨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형식주의 논쟁으로 존 허트필드 (John Heartfielde (1891-1968)가 “중국 차나무 뿌리 사자상“과 함께 표지 디자인하고 이 디자인을 지원하고자 브레히트는 표지 뒷면에 인쇄할 위의 시를 특별히 쓴 것이 거절되자, 브레히트가 두 버전으로 인쇄되도록 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브레히트 사후에 동독 공산당 정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시 백선』을 편집하도록 개입한 수난 역사인 셈이다.[8]




위 도표에서 오른쪽 녹색으로 표기한 삭제 시들과 왼쪽 노란색으로 표기한 추가 시들 (청색은 제목만 바꿈)을 비교하면, 단순히 출판이나 편집상의 보충이나 개정의 관점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53년 6월 17일 시민 봉기란 쓰라린 경험을 했으며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이 목적인 동독 공산당은 히틀러 비판시 2편과 “혁명의 찬양 Lob des Revolutionärs“이란 시를 아예 시집에서 삭제하고 그 대신 추가한 “레닌 서거일 칸타타“와 비문 등은 브레히트 2200여 편 시들 중에 엄선된 100선이라기 보다 동독 정권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추가된 시들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되고 난 뒤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1998년 브레히트 『시 백선』을 출간하면서 1958년부터 동독에서 출간되었던 시집을 아래 소개하는 시만 남기고 초판처럼 40년만에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 112편으로 『시 백선』을 재인쇄하고 통독 독자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노동자들은 먹을 걸 달라고 아우성이네.

상인들은 시장 개척에 아우성이지.

[실업자들이 굶어 죽었네. 이제는

일하는 사람이 배고프다.][9]

무릎에 놓였던 손들이 다시 움직이지:

손들은 유탄을 돌리지.


(GBA 12, 10)


비록 동서독간 장벽은 무너지고 통일이 되었지만, 이념을 넘어선 주제라 그냥 『시 백선』에 남겨두고, 브레히트 『시 백선』의 수난을 기억하게 하고자 함일까? 어쩌면, 『시 백선』이 겪은 수난은 »베를린 앙상블«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동베를린을 택한 브레히트 문학이 마땅히 겪어야 할 대가였을 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새전집에서는 이런 사실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부록에다 『시 백선』에 실린 시 목록, 총 112편을 그냥 나열하고 있다.[10] 이는 결국 초판도 1958년판도 아닌 아우프바우 1998년판의 목록 내지 오류를 지닌 해설인 셈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브레히트 『시 백선』을 초판에서 통독 이후에 나온 시집들과 면밀하게 비교해 연구하지 않으면, 연구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이 되기 싶다. 왜냐하면, 연구자들이 새전집 해설만을 믿고 1951 초판에만 의존하거나 같은 시집인지 알고 이후에 출간된 시집을 연구 기본서로 선택했을 경우에 웃지못할 일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출처: 주경민, 소네트로 읽어주는 브레히트 시와 시론. 서울 2022, 287-295쪽)

(2022년 8월 15일, 독일 칼스루에에서)



마치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처럼 된 1935년 망명에서 쓴 시



[1] 『시 백선』이라는 시집 이름만 같고 112편 시를 수록한 것 이외는 아우프바우 출판사 초판과 그 이외 판들과 내용상으로 전혀 다르다. [2] 헤르츠펠데의 편집 후기는 두 버전 초판에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같은 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BFDS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다. Brecht: Hunderte Gedichte. 1918-1950. Bibliothek fortschritlicher deutscher Schriftsteller. Berlin 1951. 307-318쪽 참조 [3] 『가정기도서 Die Hauspostille』의 마지막 시 “죽은 병사에 대한 전설“에 나오는 시구. [4] 『시 백선』의 이 시 제목은 원래 "우리 작가들이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지“란 제목이다. [5] 비교: GBA 15, 463쪽과 헤르츠펠데 문서보관소 https://heartfield.adk.de/en/node/2788 [6] 추가된 두 편 시는 “만리장성 위를 날면서 생각 Gedanken bei einem Flug über die großen Mauer“과 "선한 사람들에 대한 노래 Lied über die guten Leuten“이다. [7] 주로 『스벤보르 시집』에 수록된 “독일 전쟁교본“ (GBA 12, 9 -15쪽)의 13편 시들이 추가되었지만, 1998 년 100주기 기념판 『시 백선』에서는 “노동자는 배고파 소리친다 Der Arbeiter schreien nach Brot“만 남기고 12편은 다시 초판에서처럼 삭제되어 총 112편이 수록된다. [8] 참조, 주경민: 소네트로 읽어주는 브레히트 시와 시론. 서울 2022, 245-248쪽. [9] 이 구절은 1958년 증보판과 1998년 이후 판에서 빠져 있는 시구이다. [10] 비교, GBA 12, 33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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