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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비웃음"에 대한 소네트

2020년 2월 13일 업데이트됨

- 서사극 형식을 말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서사극 창시자 브레히트의 비웃음


     브레히트는 자신이 동양극에서 이전한 "옛 형식"에 대해 양사방에서 논하는 동시대인들을 위해 1935년 뉴욕의「어머니 Die Mutter」의 초연 (11월 19일)과 관련하여 지었다고 추정되는 「극작가의 노래 Lied des Stückeschreibers」를 통해 자신의 첫 희곡 작품에서부터 그 당시까지 시도했던 모든 연극작업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내가 본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난 다른 민족들과 다른 시대의 연극술을 검토하지. 몇 작품을 나는 번안했네, 아주 똑같이 각 기술을 점검하고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내 가슴에 새기며. 나는 영국인들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유명한 귀족들의 표현력을 연구했지 세상이 크게 확장되도록 이들을 이용했네. 나는 도덕적 견해를 고수한 스페인인들 아름다운 감정 표현의 대가인 인도인들 그리고 가족들을 연기하는 중국인들 그리고 도시들에서 다양한 운명을 연구했다네.

(Lied des Stückeschreibers, 1935년, GBA 14, 298 ff.) 


   윗 시에서처럼,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사극』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아시아극을 『서사극』의 모델 내지는 정형으로 삼고자 했다. 즉 인도극에서는 그리이스 비극에 버금갈만한 극구성의 선례를, 중국극이나 일본의 能演劇에서는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연기법이나 연기술 등의 연극 기술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자신의 『서사극』에 수용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1938년 8월 3일자 작업일지에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 분야에서 내가 갱신자이기 때문에, 나를 형식주의자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들이 항상 있다. 그들은 나의 작업에서 옛 형식을 찾아내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새로운 어떤 형식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내가 관심을 두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나는 다양한 시대에 속한 시, 소설, 희곡술 및 연극의 옛 형식을 연구했다. 그런데 그러한 형식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그것을 곧 바로 포기했었다" (GBA 26, 315f.)


    브레히트가 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실상 서사극으로 대표되는 대작들이 대부분 완성되었다. 즉, 왠만한 "옛 형식"을 아시아 연극에서 거의 모두 자신의 서사극에 이전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연극학자는 물론, 문학비평가와 연구자들이 서사극 형식에 대해 논쟁하는 것에 대해 "나의 작업에서 옛 형식을 찾아내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새로운 어떤 형식을 발견하고 자기가 관심을 두었던 것"이라면서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브레히트 120주년, 지난 8월 14일로 그가 죽은 지 62주기가 되는 현재에도 브레히트의 이 비웃음은 진행형이다.

예를들어, 한국 연극학자들과 일부 브레히트 연구자들이 여전히 브레히트가 남긴 일본 能演劇의 꼬리만을 잡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 능극을 가지고 "브레히트와 동양연극" (이상면, 평민사)과 같은 거창한 책들을 계속 펴내는 비웃음꺼리를 자처하고 있다. 브레히트 자신이 일찌기 스승인 포이히터방어를 통해 인도 산스크리트극을 접했고 그 이후 중국 원잡극 그리고 일본 노연극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접했었으며, 스테핀이 망명지로 가져온 산스크리트극 독어판, 2권은 중요한 후기 희곡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사천의 선인" 그리고 "코카서스의 백묵원"등을 창작하는데 지침서가 되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테핀의 원고들을 전부 남겼지만, 이 두권의 책을 전망명지를 끌고 다녔고 베를린 유고 도서관에 남겼을 정도로 그에게는  "서사극을 위한 귀중한 교본"이었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서사극 이론을 발전시키고 정립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유독 산스크리트 극을 연구하고 자신의 서사극에 이전한 사실에 대해 비교적 언급을 피했고, 언급한 경우라 할지라도 아주 간접적이었다. 그래서, 서사극 형식의 뿌리를 학문적(연극사적, 문헌학적)으로 밝혀내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브레히트가 구체적으로 남긴 흔적의 꼬리를 잡고 계속 연구를 거듭했었다. 그 꼬리는 다름 아닌 1929/30년 일본 能 (Nô)연극의 한 작품인 『谷行 (Taniko)』를 가지고 번안했던 교훈극 『긍정하는 사람 Der Jasager』(1929/30)에서 처음으로 能劇의 희곡을 자료로 삼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서사극의 뿌리를 찾는 점이다. 물론 그 작품만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서사극의 형식과 기술을 일반화시킨다면, 엄청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이미 그 형식을 교육극 몇몇 작품에서만 제한해서 사용했고, 그의 말대로 "곧 바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브레히트의 비웃음에서 빠져 나올려고 몸부림치는 연극 전공 학도들이나, 브레히트 서사극을 전공하는 학도들에게 브레히트 코드가 브레히트 120주년 기념으로 내놓는 아래 콘텐츠를 꼭 한번 필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브레히트 비웃음 탈출 프로젝트




brecht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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