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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ogos

두보와 브레히트 간극 사이에 2해와 5해!!

최종 수정일: 2021년 9월 25일


문학사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는 동,서양 문학 수용에서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 출발은 두보와 이태백 시인에 얽힌 이야기인데, 결국 독일 문학사에서 클라분트와 브레히트 사이 내지 관계로 발전된 이야기이다.

두보 시인은 영왕 인(永王 璘)의 죄에 연루되어 유배가는 이태백(李白) 시인에게 부친 시 한 수가 있는데, 이 시의 제목이 바로 〈寄李十二白二十韻〉이다. 흔히들 <寄李白(기이백)>이라 부른다.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에 이태백은 광려(匡廬) 사이에 전전하였는데 영왕 인(永王 璘)이 불러서 막부(幕府)의 보좌로 삼았다. 인(璘)이 제멋대로 군사를 일으키자 이태백은 도망하여 팽택(彭澤)으로 돌아갔는데, 인(璘)은 패배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이태백도 이에 연류되었으나 곽자의(郭子儀)의 도움으로 죽음은 면하였다. 이태백이 황제의 명령으로 야랑(夜郞)에 유배가던 도중에 마침 사면을 받아 심양(潯陽)으로 돌아가다가 일에 연류되어 심양에서 하옥되었던 사건이다. 두보가 이태백에게 붙인 시는 다음과 같다.


두보 시인과 이태백

寄李白(기이백:이백에게) 昔年有狂客 (석년유광객) 지난 날 광객(狂客) 하지장(賀知章) 있었으니 號爾謫仙人(호이적선인) 그대를 적선(謫仙)이라 하였지. 筆落驚風雨(필락경풍우) 붓을 들어 글씨 쓰면 비바람 놀라게 하고 詩成泣鬼神(시성읍귀신) 시 지으면 귀신들 곡하게 하였네. 聲名從此大(성명종차대) 명성이 이로부터 커지니 汨沒一朝伸(골몰일조신) 묻혀 살던 몸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오. 文彩承殊渥(문채승수악) 아름다운 문장 특별한 총애 받으니 流傳必絶倫(유전필절륜) 세상에 유전(流傳)함 반드시 크게 뛰어나리라. 龍舟移棹晩(용주이도만) 천자(天子)의 용주(龍舟) 노 저음을 더디게 하였고 獸錦奪袍新(수금탈포신) 짐승 무늬의 비단 도포 새로 하사받았네. 白日來深殿(백일래심전) 대낮에도 깊은 궁전으로 드나들었고 靑雲滿後塵(청운만후진) 청운(靑雲)의 선비들 뒤따라오느라 먼지 가득하였네. 도교에 심취한 클라분트는 불어로 번역된 이 시를 읽고 이 시를 이태백의 시로 보고 다음과 같은 번안시를 쓰고 1916년 "이태백"이란 시집의 첫번째 시로 출간한다:


1916년 라이프치히에서 출간된 클라분트 번안시집 "이태백" 초판

두보가 이태백에게 사람들은 그댈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비라 부르지 하늘같이 - 그대 시구(詩句) 앞에 울림은 전사의 창을 쪼개고, 황제의 제국을 무너뜨리지. 그대는 우리가 중천에 보게되는 태양이네. 구름이 우르르 쾅쾅 울리면. 그대는 뇌우가 되지. 눈물로 그대는 그대 시구를 흘러내리도록 하네 - 밤의 달빛 속에서 불멸의 시들을 읽지, 미소 짓고 울며, ‘그가 창작했다‘고 생각하지.


문학청년 브레히트 1918

이 시집은 당시 독일에서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시인이 되고자 했던 브레히트도 물론 이 시를 읽은 듯 하다. 갓 스무살을 넘긴 브레히트는 이 시를 가지고 자신의 희곡 "바알 Baal"에다 도입할 시를 쓰는데, 그냥 배꼽잡고 웃어야 할지 그냥 이해하고 봐줘야 할지?! 이태백은 일흔 가지 언어로 말할 수 있네. 일흔 지옥 마귀들이 그를 시험할 수 없지. 이태백은 일흔 가지 언어로 기도할 수 있네. 이 시가 절친이자 브레히트의 주치의였던 뮌스트러가 회고하듯이, 브레히트는 자신의 희곡 "바알 Baal" 초고에 들어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들 보는 희곡에는 다행이 빠졌으며 새전집 개별시(GBA 13, 124)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보 시가 이태백 시로 변하고, 아무리 동양에서 "시선 (詩仙)"으로 알려졌지만 브레히트가 시인 "이태백"을 저렇게까지 표현했다니, 동서간에 놓인 벽은 한없이 높고도 높은 게 아닌가?! 이런 오해를 밝혀내고자, 브레히트코드는 클라분트가 번안한 이태백 시의 해설과 번역판을 기획중이다.


국내에 클라분트 문학을 알리기 위해 작업 중인 클라분트의 "이태백 시집" 해설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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