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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소네트 - 15번, 상스러운 말들의 사용에 대해

2020년 1월 14일 업데이트됨

- 브레히트 소네트, '외설적 시' 아니면 '예술적 사랑'인가?!






소네트 15번 (상스러운 말들의 사용에 대해)


무절제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나에게 허락하세, 친구들이여, 너희에게 요구함을 거친 말로 이렇게 너희에게 내던지는 것을 마치 이 일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나에게!

‘떡치는’ 중에 말은 흥분을 유발할 수 있네 명칭이 ’방아꾼‘을 기쁘게 하지 '떡치기'라는  예를 들어 말로써 제 주위에 내던지는 자는 구멍 많이 난 깔개 위에 누워야 할 것이네.

완벽한 ‘방아꾼’을 매달아야만 할 것이네! 여자가 때때로 방아질하면, 좋은 일이야. 그 어떤 밀물도 방망일 깨끗이 하진 못해!

남정네의 기술은 그것이야: 떡치기와 생각

세척은 단지 마음에만 하지 못하네!  (그런데 남정네의 사치는 그것이야: 우스개.)

Sonett Nr. 15 (Über den Gebrauch gemeiner Wörter)


Mir, der ich maßlos bin und mäßig lebe Gestattet, Freunde, es euch zu verweisen Mit rohen Wörtern so um sich zu schmeißen Als ob es daran keinen Mangel gäbe!

Beim Vögeln können Wörter Lust erregen: Den Vögler freut es, daß das vögeln heißt. Wer mit dem Wort zum Beispiel um sich schmeißt Kann sich auf löchrige Matratzen legen.

Die reinen Vögler sollte man nur henken! Wenn sich ein Weib mitunter auspumpt: gut. Den Baum spült sauber keine Meeresflut!

Nur nicht dem Geiste eine Spülung machen! Die Kunst der Männer ist’s: vögeln und denken. (Der Männer Luxus aber ist’s: zu lachen).

(GBA 11, 128. 1926년) 




브레히트 소네트에 대해 (상스러운 말들의 사용에 대해)


브레히트는 '떡치기'에 대해 우리에게 시에다 쓰고 생각했지 실제로 남정네 기술에 대해선 그리 나쁘지는 않아 (이걸 우리는 높이 평가할 줄 알지). 그런데 만약 그가 우리에게 사치를 약속하지 못하면, 그게 맞을까? 그건 모욕이지.

"우스개 소리가 그런데 남정네의 사치이다." 우리가 두 다리를 좍 벌리면, 마치 우리를 이따금 각종 말들도 흥분시킬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마치 그 때문에 걱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전혀 말들은 상스럽지도 않지. 또한 늘 우리를 촉촉하게 하는 건 - 좋은 일이지. 상스러운 건 우리가 어떤 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그럼에도 우린 생각할 수 있고 용서도 할 수 있지. 무엇보다 브레히트를. 그는 우리에게 보통 더 용기를 주지. 그리고 인간의 사치는 결국 '사랑하는 일'이라네.


Zu Brechts Sonett (Über den Gebrauch gemeiner Wörter)


Vom Vögeln schreibt uns Brecht hier und er denkt Ja wahrlich schlecht nicht von der Kunst der Männer (Die wir zu schätzen wissen). Aber wenn er Uns keinen Luxus zuspricht – stimmt’s? Das kränkt.

„Der Männer Luxus aber ist, zu lachen.“ Als würden uns, wenn wir die Beine spreizen, Nicht auch gelegentlich die Wörter reizen. Als würden wir uns deshalb Sorgen machen!

Und überhaupt: Nicht Wörter sind gemein. Was immer auch uns nass macht – es ist gut. Gemein ist’s, wird kein Geist uns zugeschrieben.

Doch könn’n wir denken, könn’n wir auch verzeihn. Zumal dem Brecht. Macht der doch sonst uns Mut. Und schließlich ist der Menschen Luxus: lieben.

(Ingebort Ar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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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번역 소개되는 위의 두 소네트는 이미 앞에 소개했던 브레히트가 스테핀에게 보낸 "첫 번째 소네트 Das erste Sonett"에 스테핀이 브레히트가 보낸 소네트와 관련된 내용의 소네트로 답하는 시와 다르다. 왜냐하면, 브레히트의 소네트 15번 "상스러운 말의 사용에 대하여"에 대해 브레히트 사후에 독일 여류작가 아를트 Ingeborg Arlt가 브레히트 소네트에 소네트 형식으로 답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 소네트 쌍은 브레히트가 스테핀과 사랑을 주고 받았던 소네트 대결과 달리, 여성해방 세대인 여류 작가 (1949년생)가 소네트 거장인 브레히트의 '아우크스부르크 소네트' 15번에 대해 여성적인 입장에서 브레히트가 사용하는 "상스러운 언어"를 동원해서 맞승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앞에서 번역  소개한 "평범한 동침에 대한 소네트", "천사의 유혹에 대해"와 "사우나와 성교"란 소네트와도 조금 내용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소네트에서 "상스러운 말의 사용"이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앞의 다른 소네트에서 언급했듯이, 젊은 브레히트는 이미 아우크스부르크 소네트에서 엄격한 소네트 형식을 동원해서 남녀의 사랑 행위를 시에다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고, 특히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상의 글들에서는 훨씬 더 자유분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상스럽고, 비문학 내지 비교양적인' 어휘들은 독일의 문호인 괴테나 브레히트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문이 열렸다. 이런 언어를 문학 작품에 표현하는 시도는 장르만 다르지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에서 소설가 황석영이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르포 형식의 소설에서 1980년대 초에 책으로 펴낸 것과 같은 시도라 할 수 있다.

    괴테나 브레히트가 소네트에 이런 거친 말을 표현하기 이전에, 이런 어휘의 사용은 실제로 학문의 영역에서는 아주 앞서고 있었다. 왜냐하면, 괴테나 브레히트가 남성의 성기를 속어로 "자지 Schwanz"로 제시한 것을 의학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페니스 Penis"라고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괴테 J. W. Goethe의 "관능적인 시들"은 무엇보다도 '욕구의 상징'으로서, '언어의 본질'로서 접근하고 있다. 괴테 작품에서 여성이 언어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해 괴테는 "자기 문학 작품이 사랑의 완성에 대해 확실히 망각해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괴테는 욕망과 문학 사이에서 '뒤죽박죽이 된 불분명함'과 글과 욕구 사이에 '구별이 없어지는' 자신의 관능적 글들에 대해 스스로 말했다.

    괴테가 1810년에 8행으로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일기 Das Tagebuch"란 시에서 자기 문학에서 관능적, 연애적인 글에 대해 "각 문학의 방법에서 결국 우리에게 / 도덕을 진지하게 요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 나 또한 아주 선호하는 노선에 있고자 하네. / 운율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너희에게 고백하네 / 하지만 세상에서 지상적인 바퀴에다 / 두 개의 훌륭한 지레를 더 가질 수 있지: / 아주 막대한 책임, 끝없이 더 다양한 사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괴테와는 달리, 20세기의 괴테로 일컬어지는 브레히트는 오늘 "상스러운 말들의 사용에 대해"란 '아우크스부르크 15번째 소네트'에서 "무절제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내가 / 상스러운 말로 이렇게 너희에게 내던지는 것을/ 친구여, 이것을 너희에게 환기시키는 것을 허락하세"라고 시작해서 "성행위"에 대해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브레히트의 위의 시를 한국말로 번역하고자 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국어 사전에 나오는 말로 적절하게 번역할 용어의 절대적 결핍 내지는 번역자의 어휘력 부족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우선 본 소네트에 등장하는 "성행위"와 관련된 상스러운 독어 용어인 "Vögeln"에 적합한 한국말이 아주 궁색하기가 그지없다. 독어에서 이 단어는 삽화에서 나타나듯이, 새들이 교미하는 표현을 남녀의 성행위에 접목시켜 표현하는 소위 '상스러운' 말이다. 그런데, 소네트에서 브레히트가 표현하는 동사, 명사를 대치하는 우리 고유의 말이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너무 상스럽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 누구나 당장 이해 가능한 용어"인 "떡치기, 떡치다, 방아꾼"을 번역어로 채택했다. 그런데, 아주 어린 시절 시골 사투리가 입에 맴돌지만, 오랜 외국 생활에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어서 순수 한국어로 이에 대한 용어가 없는지, 국어 사전을 찾아봐도 별 수가 없었다. 언어라는 것이 생명력이 있어서, 일상 생활에 사용되지 않으면 그 생명력을 잃거나 다른 언어로 대치되거나 잠식되어 버리며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고유어가 천한 말로 전락하고 만다. 그 예가 아래에서 국어 사전에 우리말 "빠구리"라는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한자어이다. 누구나 "섹스 SEX"란 말을 입에다 쉽게 담지만, 그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은 고작해야 "성행위"나 "성교"이다. 그런데, 이 말 역시도 실제는 우리 고유의 말이 아니라 한자말이다.

    번역에 사용한 남여의 사랑 행위에 대해 "떡치다"는 말은 아직 흔히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번역을 기회로 장시간 찾아 본 결과, 특수 지방에 제한되어 사용되는 말들을 꽤 찾을 수 있었다.  즉 '보듬다', '하나되다', '짝짓기하다'와 '살 섞다' 등의 말로 시작해서 '얼이하다', '빠구리하다', "씹하다', '헐레붙다', '사뽀뽀하다', '품자리하다' 그리고 필자가 어린시절 봄철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삐삐"를 뽑으면서 사용하던 말을 어렴풋이 기억나게 하는 경주나 경상도 지방 사투리인 '삐꿈하다' (참조: 경주어 대사전) 등의 생소한 동사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명사형이나 접미어를 붙여 그를 행하는 사람의 표현등이 궁색하기는 여전하다. 어찌했건, 이런 말은 젊잖은 말, 속된 말을 떠나서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거의 잊혀진 '성 행위'를 표현했던 우리 고유의 말들이다.



    국어사전에서 위에서와 같이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로 '빠구리'란 말을 속어로 설명한다고 해서 한자말이 결코 속되지 않거나 고귀한 말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말은 어떤 대상, 행위나 개념을 적절하게 이해가 되도록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런 정도가 가속되면, 어느 순간에 "떡치다"는 말을 국어사전에다 "sex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해야 이해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독일의 문호 괴테나 브레히트가 소네트 형식을 빌어서 남녀의 사랑 행위에서 오가는 은밀한 언어를 굳이 소네트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개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두 작가의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면만 보면, 브레히트의 '외설적 시'를 국내에 번역 소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번역을 통해 무엇보다도 "고유의 우리말 보호"에 대해 국내에서 글쓰기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자기 자신 의식의 수준 만큼만 이해하고 본다"는 말이 있듯이, 본 소네트를 두고 '외설적'이거나 '상스러운' 측면만을 가지고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흘러 괴테나 브레히트의 깊은 뜻을 곡해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2015년 새해 아침에 - 이 시는 "브레히트 시, 777선 번역 프로젝트" 중에 하나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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