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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국수주의" - "지식인의 식민지적 징후"

- 김욱동 지음, 「탈춤의 미학」 (서울 현암사 1994)


지난해 초여름 현암사가 내놓은 김욱동 교수 (서강대 영문과)의 "탈춤의 미학 (이하, 미학)"이란 책이 국내의 국문학계는 물론 민속학계, 연극학계에 탈춤 논쟁의 불을 당겼다고 한다. (한국일보 8월 27일자).

무엇보다도 논쟁의 쟁점이 된 것은 국문학자가 아닌 한 영문학자가 이제까지 탈춤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았던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서울대 국문과)의 대표적인 탈춤 연구서인 "탈춤의 역사와 원리 (이하, 역사)" (홍성사, 1979)를 집중 비판하고 나선 데에 있다고 보겠다. 

   김 교수는 탈춤을 “인간의 유희본능을 표현한 카니발”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련의 국내의 탈춤 연구들을 “민중 콤플랙스” (23쪽), “문화적 국수주의” (37쪽)라 비판하고 나섰다. 김 교수의 주장과 관련된 서구의 문화 인류학자들 내지는 문학 이론가들 - R. Caillois, J. Huizinga, M. Bakhtin, R. Schechner, V. Turner, A. Van Gennep 등- 의 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탈춤은 인간의 유희본능에 뿌리를 둔 카니발의 한 형태로서 서구의 이론틀로 분석할 때 풍부한 해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책머리에서 “헤겔의 변증법을 들어 조 동일 교수의 "탈춤의 역사와 원리"를 正, 자기의 "탈춤의 미학"은 反, 또 하나의 合을 기다린다는 변명” (11쪽)을 앞세우고 이제까지의 탈춤 연구들을 김 교수의 관점에서 통시적‧공시적으로 비판을 했고, 아울러 탈춤 연구와 해석에 상당한 폭을 넓히는 데 성공을 하고 있다.


문화적 국수주의
취발이 아, 잘 맞는다, 이게 뭐람. 나도 한창 소년시절에는 맞아본 일이 없는데 아 또 맞았구나. .... 중이면 절간에서 불도나 섬길 것이지 중의 행세로 속가에 나와서 이쁜 아씨를 하나도 뭣한데 둘씩 데려다 놓고 낑꼬랑 낑꼬랑. (봉산탈춤중에서)


그런데 김 교수의 주장은 그나마 이상일 교수 (성대 독문과) 등의 “축제의 劇化” - "민족심상의 예술학" 시인사 1984, - "축제의 극화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연극학, 새문사 1985, 7쪽-35쪽) - 라는 연구로 어느 정도 놀이인 ‘카니발’의 영역에서 미학적으로 한 단계 앞선 “연극”의 형태로 발전시키고 정립한 탈춤을 자칫 잘못하면 또 다시 그야말로 단순한 「놀이」로 비하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고 본다.

    나아가서 김 교수의 현재의 주장은 지극히 현학적이 되기 쉽고, 잘못하면 학문 (서구이론)의 폭행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책은 “탈춤을 유희본능에 기초한 카니발”이란 명제 뒤에 있는 서구의 문화 인류학자들의 이론서를 정확하게 소개하지 않았고, 또 그로 인해서 오해의 소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나열한 이론들은 국내에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았고, "한국 연극학 제 4호" (한국 연극학회, 서울 1991, 9 - 102 쪽)에 겨우 새로운 방법론으로 일부 소개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국내 학계에 김 교수의 “서구 이론의 적용 가능성”이란 주장은 그야말로 애초에 문을 막아놓고 토론을 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이런 이론, 이런 책을 먼저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누구나가 참여하도록 그 이론서들의 정확한 번역 내지는 최소한 자기 논리의 전개를 위한 부분 소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개념 정의와 구체적인 문제가 최소한 소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 그것이 외국 문학자의 기본 양심이여야 한다. 

  김 교수는 조 교수의 연구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외국 자료를 사용하는 학자들이 원전을 읽지 않고 대개의 경우 다른 학자들이 인용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다시 사용하기 일쑤다” (45쪽)라면서 국내 학문 연구의 실상을 폭로했고, 나아가서 “서구이론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제하고, 연구 당시에 (1979) 브레히트 "서사극"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조 교수가 저지른 실수 (역사, 180쪽)를 꼬집으면서 김 교수 자신도 브레히트를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 브레히트”라고 기술하는 이중 실수를 범하고 있다 (미학, 40, 47쪽) .

   김 교수 자신이 책머리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그는 국문학자도 독일 문학자도 아니다. 그래서 그러한 실수는 간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 교수의 실수보다는 김 교수의 실수가 도가 지나치고 문제가 많다고 보겠다. 왜냐하면 그 당시 (1979년)에 브레히트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브레히트의 기본서도 번역되지 않았기에 조 교수의 실수는 이해가 가지만, 국내에 브레히트의 기본서의 번역은 물론 “브레히트 학회”까지 있는 지금 시점에서 소위 “양서”의 집필자가 브레히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웃을 그러한 실수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에 관계된 것 말고도 김교수는 Commedia dell' arte, 제의와 카니발, 연극 등의 “개념 정의”에 착오내지 이해를 달리 하고 있다. 

그 예로 김 교수가 자신의 논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잡은 이론이나 개념들에서도 똑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김 교수가 설정한 “탈춤이 인간의 유희본능을 표현한 카니발”(미학, 161쪽 이하)이란 논제하에 탈춤을 “놀이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카이 (Agon, Alea, Mimicry, Ilinx)로 갈라서 구분” (Caillois 18쪽 이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춤을 "Mimicry (Verkleidung, 연극)"로 보지 않고 "Ilinix (Rausch, 도취)"로 구분하여 논리를 펴고 있다.

   김 교수가 “놀이”의 개념조차도 정의하지 않고 자신의 논지만을 펴는 것은 혼선을 빚을 우려를 다분히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탈춤이 “놀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같은 “오락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하게 탈, 분장, 춤 그리고 비유적 언어를 통한 “사회적 갈등”을 놀이의 영역 내에서 해결해 보고자하는 구체적 목적이 있는 “Mimicry” 즉, “연극”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춤은 “카니발”과 “연극”의 두 개념의 애매한 영역에 있기는 해도 확실하게 “연극”의 개념에 속하고, 그 기본 의식도 연극 쪽에 가깝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탈춤을 “카니발의 한 형태”로 보고 있지만, 김 교수가 정독을 했고 "탈춤의 미학"의 산파 구실을 했다는 터너의 책 “제의에서 연극으로 (Vom Ritual zum Theater)”에서 분명하게 구분하듯이, 탈춤은 “카니발”의 사회적 연극 (Soziales Drama)의 성격을 뛰어넘은 소위 예술 또는 무대 연극 (Bühnendrama)이다. (Turner, 95 - 139쪽) 나아가서 터너는 제의, 축제, 연극 등은 하나의 사회가 “갈등 상황”에 놓일 때,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택하게 되는 제 문화 형태를 “통과제의” (Übergangsritual)로 보고 있다. 

   결국은 반 게네프의 “통과제의”를 밑바탕으로 인간의 놀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탈춤은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구별없이 다함께 어울려 유쾌하고 흥겹게 벌이는 축제이다. 그리고 지배계층은 이 놀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미학, 459쪽)라는 김교수의 입장은 탈춤의 주내용 (승려의 비판, 양반의 비판 등)을 대하게 되면 설득력이 약해진다. 



독자는 김 교수의 저서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카니발”의 개념이나 이론들을 맛볼 수는 있으나 정확한 “서구이론의 틀”은 결국 만나지 못한다. 물론 많은 원서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민속학자나 국내학자들이 서구의 원서를 읽지도 않았고,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고 연구에 도입한다”는 비판을 설득할 만한 서구이론의 정확한 소개나 개념 설명을 "탈춤의 미학"에서도 역시 찾기 힘들다. 

    결국은 김 교수의 국내 탈춤 연구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외국 문학자인 김 교수 자신과 외국에서 먼저 서구이론을 접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되돌아 왔다. 되돌아 온 화살에 대한 원인을 알고 상대방에게도 그 화살을 똑 같이 나눠주고, 또 다시 시위를 당겨야 한다고 믿는다. 공정한 경기를 위해서 말이다.     어찌했건 간에 조교수가 쌓아둔 10여년이 넘은 오랜 성벽은 이제 무너지기 시작했다. “민중 컴플렉스”, “문화적 국수주의”란 비판 앞에, 조교수의 제자가 스승을 위해 “지식인의 식민지적 징후”라고 반박하고 나선 제 1라운드에 이어, 앞으로 전개될 제 2라운드는 “무기도 없이 뺨맞은 자들”에게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김 교수는 물론, 관련 학자나 외국 문학자들은 그들에게 화살 (서구이론)을 다시 쥐여줘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한 토론이 될 것이고 그야말로 김 교수가 바라는 “合”에 이를 것이다.     그 무기는 다음의 책들이 최소한 번역되고 읽어져서 토론될 때 “合”에 이르게 될 것이다. 合에 이르는 길은 성급하게 즉시 반론을 제기해서 원색적인 “식민지 - 문화적 국수주의”란 말로 장식할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을 위해서 이론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가 제 2 라운드를 위해서 해야 할 준비 작업이라고 믿는다. 그 책들을 나열하자면, 

  • Barba, Eugenio: Jenseits der schwimmenden Inseln. Reinbek 1985. Caillois, Roger: Die Spiele und die Menschen. Maske und Rausch. Stuttgart 1960. 

  • Van Gennep, Arnold: Les rites de passage. Übergangsriten. Frankfurt a.M. 1986 

  • Geertz, Clifford: Die künstlichen Wilden. Der Anthropologe als Schriftsteller. Frankfurt a.M. 1991 

  • Huizinga, Johan: Homo Ludens. Vom Ursprung der Kultur im Spiel. Reinbek 1987.(권 영빈 역, 홍성사) 

  • Schechner, Richard: Theater-Anthropologie. Spiel und Ritual im Kulturvergleich. Reinbek 1990. 

  • Turner, Victor: Vom Ritual zum Theater: der Ernst des menschlichen Spiels. Frankfurt a.M./New York 1989. 

  • Turner, Victor: Das Ritual. Strucktur und Anti-Strucktur. Frankfurt a.M./New York 1989.


    적어도 위의 책 정도는 번역을 해놓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번역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김 교수의 시도는 “외국 문학자의 일방적인 先知識 획득의 횡포”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김 교수가 이론서로 택한 서적들이 한번도 학문적으로 토론‧정립된 적이 없는 터전에서 그것을 곧 바로 비판의 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위의 문화 인류학자들 (터너, 셰크너, 게네프)은 현장답사와 자료 수집을 통해 이론정립을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단순히 인디언 문화를 넘어서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에 상당한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김 교수의 “서구이론의 적용 가능성”이란 주장은 탈춤을 재정립할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이정표의 제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어찌했건 이제까지 탈춤연구에서 제기된 많은 의문에 김 교수의 "탈춤의 미학"은 그 답과 대안을 주고 있다. 동시에 번역을 통한 건전한 토론을 전제한 “Fair Play”의 필요성을 국내 학계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김 교수는 조 교수의 反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고, 또「正-反-合」이란 헤겔 변증법의 도식이 성립될 굳건한 기반을 이 책을 통해서 충분하게 다졌다고 볼 수 있다. 

    김 교수의 "탈춤의 미학"은 몇몇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탈춤 연구는 이제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사용해 온 연구 방법론을 뛰어넘어 탈춤 연구에 새롭고도 획기적인 지평을 열지 않으면 안 될 전환점에 이르렀다.” (미학, 19쪽)라는 충심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이 충고에 국문학계, 민속학계, 연극학계에서는 무조건 반박을 할 게 아니라 옷깃을 여미고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솔직하게 말해서 79년 조 동일 교수가 획기적인 연구를 내놓은 이후, 국내 탈춤 연구자들은 그 그늘아래서 15여년을 안주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그 그늘을 떠나서 새로운 반증을 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안일하게 머물렀던 국내학계에 김 교수의 "탈춤의 미학"은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이것을 새로운 출발로 삼아 앞으로 탈춤은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서구 사회인류학자들이나 연극인류학자들이 추구하는 관점을 탈춤 연구에 수용하여, 탈춤을 “민중”의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던 종래의 방법론을 뛰어넘어 사회사‧문화사적으로 재점검하여 새로운 연구 성과를 이룩해야 하겠다. 

    이제까지의 탈춤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와 탈춤이 민중‧민속극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사회‧문화사적으로 재해석하는 길은 많다고 본다. “제의와 연극”, “상징적인 민중문화로서 탈춤”, “탈춤의 탈과 상징성”, “민중 문화의 전승 방법으로서 탈춤”, “놀이의 영역에서 언어와 춤의 기능”등 많은 관점들이 사회문화학자들, 연극문화학자들의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탈춤을 재해석하게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들의 연구 성과는 서구의 문화‧사회를 바탕으로 한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동양의 연극이나 문화를 가지고 서구 문화나 사회를 재해석한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70년대 “민중”이란 개념을 발전시키고자 국내학자들이 이러한 면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바가 없지 않지만 이것을 “반박(反駁)”하기 위해서 “민중 컴플렉스”, “문화적 국수주의”로 치부하고, 카니발의 차원에서 논리를 전개한 김 교수의 "탈춤의 미학"은 꼭 한번 읽고 논쟁해 볼 만하다. 전공 학문에 관계없이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말이다.  (칼스루에 1994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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