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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주여,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분단은 아주 냉혹했습니다  마침내 당신의 화평의 은혜를

 한민족에게도 내려주시사  휴전선 철조망을 활짝 걷어내시고

 그 위에다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할

평화의 바람을 풀어놓으소서!

 (2009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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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재통일"을 주제로 삼아 문제가 된 통일소설

- Günter Grass 『광야 廣野 Ein weites Feld』(Göttingen 1995)





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콧수염만 기른 성난 듯한 넙적한 얼굴에 걸맞지 않게 조그만 안경을 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 )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는 통일 이전에 모든 대중매체 (신문, 잡지, 텔레비전)는 물론 강연이나 토론 그리고 인터뷰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독일이 통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대표적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귄터 그라스
귄터 그라스

하지만 그라스의 통일반대와는 달리 노처녀 시집가듯 바쁘게 독일은 통일되었고, DDR (독일 민주 공화국, 이하 DDR)라는 나라는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이어서 과거 DDR은 BRD (독일 연방 공화국, 이하 BRD)의 관점에서 정치, 문화, 교육 등 전반적으로 개혁되어 나갔다. 한마디로 말하면 DDR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되어야 할 집합개념으로 부시고, 없애고, 바꾸었던 것이다. 옛 DDR을 한번 여행해 본 사람이면 길거리마다, 가는 곳마다 그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이 외형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통일 이후에 심심치 않게 과거의 STASI (동독국가정보국)의 자료들 앞에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잎처럼 현직에서 물러나던 정치인과 교수 등 과거 DDR의 집권자들과 지식인들을 지켜 보았다.

현재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요, 1965 년부터 SPD (사회민주당)에 가입해(1992 년에 탈당함) 일찌기 정치 활동을 해왔던 그라스는 통일을 막지 못한 아픔을 간직한 채로, 지난 5 년 동안 이러한 통일 이후의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라스는 그간 일종의 "통일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열병 끝에 그라스는 한 작가이자 정치인으로서 통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독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힌 『광야 Ein weites Feld』라는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광야』는 지난 8월 괴팅겐에 있는 Steidl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소설은 비평가들과 각 서점 배부용 4500 부가 발행되었고, 이어서 초판 10 만부라는 출판사상 최대의 부수가 출판됨으로써 독자들은 각 서점마다 이 책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귄터 그라스 소설, 광야 표지
귄터 그라스 소설, 광야 표지

책이 독일 독서계에 선 보이자마자 『Woche』誌에서부터 『Zeit』誌에 이르기까지 소위 저명한 독일 일간신문이나 주간지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판의 소리가 높다. 『슈피겔 Der Spiegel』誌는 지난 8월 21일자로 발행된 제 34 호에서 『광야 Ein weites Feld』를 표지 기사로까지 다루고 있다. 그 표지는 평생을 그라스의 비평가로서 동행한 75세의 노장 라이히-라니츠키 (Marcel Reich-Ranicki)가 성난 싸움개 같은 모습을 하고서 그라스의 신간소설 『광야』를 두 손으로 발기발기 찢고 있는 모습이다.

왜 금방 발간된 소설을 발기발기 찢어야 했을까? 그렇게 찢길 만큼 그라스의 소설이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일까? (이 표지가 나중에 문제가 되자 라이히-라니츠키는 "표지 몽타지를 사전에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그런 악의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라이히-라니츠키의 비판을 중심으로 그라스의 『광야』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라스의 신간 소설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광야』는 무엇보다도 독일의 재통일을 주제로 하고 있는 통일소설이다. 그것도 그라스가 애초의 소설의 이름을 『Treuhand 신탁관리』라 했을 만큼, 통일 이후 소위 과거 DDR 국유 자본을 팔아넘겼던 Treuhand(신탁관리회사)를 중심으로 독일 통일의 부정적인 문제점을 주로 다루었다. 그리고 과거 DDR을 옹호하는 논조에다 DDR에 대한 향수까지 품고 있는 관점에서 서술했다. 이에 반해 과거 DDR의 부정적인 점에 대한 비판은 소설에서 아주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스의 신간소설을 비평가들은 다투어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고, 또 이런 비판은 독일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는지도 모른다. 성급하게 당장 이 소설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불편하다고 "그라스 신간 소설의 파기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것은 어쩌면 심각한 민족주의적인 입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통일 이후 바로 집필에 착수한 그라스가 의도적으로 이런 민족주의적인 논조의 비판점을 유도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라스가 『광야』에서 기술한 통일에 대한 자신의 논조가 온갖 비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고 또 그러한 비판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고 본다. 이러한 『광야』에 대한 비판 과정을 통해서 독일 재통일이 안고 있는 문제가 다시 한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그라스는 독일과 독일 민족의 장래를 100년 전의 관점으로 다시 관찰해봄으로써, 독일 민족에게 따끔한 경고와 아울러 통일된 독일의 미래상을 적어도 소설 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의 프로이센 통일과 독일 재통일이란 100년 세월 사이에는 독일 민족이 일으킨 제 1,2차 양대 세계대전과 아우쉬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유태인 학살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은 "독일 민족이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산 교훈"이다. 그러기에 그라스는 '유태인 학살의 상징인 아우쉬비츠 강제수용소가 독일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면서, 독일 재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과거 역사를 통해 독일 민족은 배운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통일 이후 많은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일 뒤 사흘이 멀다하고 독일 전역에 일어난 네오 나치 (Neo-NAZI)들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와 방화사건, 이러한 사전에 계획된 일련의 집단테러를 '소수의 정신병자들의 소행'으로 치부하고 수수방관하던 독일 검·경찰들, 속죄와 기도의 날을 공휴일로 정해두고 그나마 과거를 속죄하던 프로그램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예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아우쉬비츠 유태인 강제 수용소를 주제로 다루었던 『Schindler Liste』란 영화를 보고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일이 되었으니 "이제는 잊어야 할 과거"란 논조로 이야기 하던 일,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소스라치며, 흐느끼던 독일 젊은이들은 하나 같이 "이 영화를 통해 아우쉬비츠가 그렇게 잔인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독일 민족이 지난 역사 속에서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도 아예 잊고 알지도 못하면서, 히로시마에 원폭 맞은 날만 되면 떠드는 얼굴 두꺼운 일본 사람들보다는 물론 훨씬 낫지만 ....)

어찌했건 통일된 뒤로 과거 역사는 까마득하게 잊혀져가고, 또 잊혀질 것이다. 점령군인 미군과 소련군은 물러가고 있다. 전범자들의 관점에서 이제 종전 50 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통일 뒤 추세에 대한 우려가 곧 『광야』에서 기술하고 있는 그라스가 통일을 보는 눈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에 대해 독일 독자나 비평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그라스는 자신의 소설에서 얼핏보기에 너무나 어리석으리만큼 유태인 문제에서 통일 이후의 옛 DDR 사회의 이야기들에 이르기까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라스는 가능하면 더 강력한 반대 비판을 유도해서 그나마 독일 민족에게 지난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 그라스가 독일 독자들, 아니 전세계 독자들에게 보내는 '주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라이히-라니츠키가 『Spiegel』誌에서 "그라스 자신이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비꼬고 있지만, 실제 정치에도 참여한 그라스가 현 독일  정세를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784쪽이나 되는 긴 서술을 했을리는 만무하며, 또 비판받을 줄 알면서도 어리석은 서술을 할 만큼 그라스는 풋내기 작가가 아닌 고희(古稀)를 앞둔 원숙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광야』의 시·공간적인 배경은 1987년에서 1992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후 베를린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라스가 『텔그테에서 만남 Das Treffen in Telgte 』(1979)란 소설에서 47 그룹의 모임을 500 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기술하고 있듯이, 독일 통일을 100 년 거슬러 올라가 프로이센 제국 통일 때에 작품활동을 했던 폰타네 Fontane (1819-1898)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첫 문장이 "문서보관소에서 일하는 우리는 그를 폰티라고 불렀다 Wir vom Archiv nannten ihnFonty"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즉 포츠담 Potsdam에 있는 폰타네 문서 보관소(Fontane-Archiv)에서 시작해서 독일 통일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대화체로 엮어나가고 있다. 그라스는 『광야』에서 폰타네의 역을 하는 주인공 테오 부트케Theo Wuttke (폰티 Fonty)와 호프탈러 (Hoftaller)를 소설의 인물로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Fonty의 동행인이자 대화 상대자인Hoftaller는 1986년 로볼트 Rowohlt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던 쉐드리히 (Hans JoachimSchädlich) 의 『탈호브Tallhover』란 소설의 주인공 탈호브를 그라스가 『광야』에 차용한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그라스는 100년 전 프로이센이 통일되던 시기의 관점을 가진 두 주인공을 살려내어 현재의 독일 통일을 주시하면서 대화·비판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라스가 이렇게 자신의 소설에서 서술시간을 100년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현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결과를 다시 프로이센 제국의 통일과 비교·투영시켜 독일 통일이 가져올 결과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두 주인공을 그라스는 자신의 "소설 인물"로 부활시킴으로써 "독일 재통일" 문제에 대한 서술을 자유롭게 할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폰타네의 분신인 폰티 Fonty를 통일 후 DDR 재산들을 사기업에 팔아넘기는 일을 담당했던 신탁회사(Treuhand)의 사환으로 일하게 하고 있고, 또 Fontane 뿐만 아니라 Stasi나 다른 비밀문서를 통해서 Fonty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형사 탈호브 Tallhover를 호프탈러 Hoftaller란 인물로 등장시켜 과거의 관점을 가지고 현재의 통일문제를 대변하게 하고 있다. 이로써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재통일„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유도해내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서로 섞어 기술함으로써 그라스는 독일  통일에 관한 "독립적 서술시간„을 창조하고 있다. 이로써 그라스는 독일 통일에 대해 문학적으로 다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비판하듯 과연 그라스 혼자만이 독일 통일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선언만 하는 것'일까? 라이히-라니츠키가 비판한 그러한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 그라스는 소설에다 다시 기술하고 있지 않다. 과거 회색빛 나던 DDR의 도시 풍경은 이제 아름다운 색깔을 날로날로 더해가고 있다. 그라스는 물론 이 빛나는 색깔을 누구보다 잘 보고 있고, 또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그라스는 『광야』에서 이 빛나는 외형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외형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진실을 말함으로써, 과거 100년 사이에 있었던 역사가 "앞에 펼쳐진 광야 (통일된 독일)"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모든 비판을 무릅쓰고 독일 민족 앞에 비장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 메세지가 소설 『광야』에 숨겨진 진실이 아닐까?


어찌했건 그라스의 소설 『광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모두 피해자인 채로 현 시점에도 분단의 아픔을 짊어지고 있는 한민족에게 큰 교훈을 담고 있다. 한민족은 독일 민족과는 달리 죄없이 일본의 침략을 당했다. 광복은 분명 제 2 차 대전 동안 외롭게 만주벌에서 일본군에 대항해서 싸워 얻은 승리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광복 50돌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독일 민족의 분단이 죄의 댓가였다고 한다면, 한민족의 분단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이 "전쟁 승리의 댓가로 받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독일 민족까지도 사죄를 받았으며 전범국인 일본은 해마다 원폭 맞은 것만 외쳐대는데도, 사죄받을 것도 없는 한민족은 일본이 지은 죄의 멍에를 지금까지도 대신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일 민족 분단과 한민족 분단은 애초에 그 성질을 달리하고 있다. 한민족 분단은 한민족 어느 누구도 원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한민족이 저지른 죄의 댓가가 아니다. 한민족 어느 누구도 그라스가 독일 통일을 반대한 것처럼 우리 민족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믿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라는 한민족이 50 년간 불러온 통일염원의 노래처럼 한민족에게 있어서 통일은 절실한 소원이요, 꿈이요, 이상이다. 더군다나 천만 넘는 이산가족의 피맺힌 절규이자, 한민족의 필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헤어진 부모자식이 서로 보고 싶을 때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통일"에는 그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줄로 확신한다.

독일이 죄 값으로 분단된 점과 희생양으로 남북한이 분단된 것을 제외하면,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황은 어느 누가 보아도 비슷한 점이 많다.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맞선 것, 동·서 냉전의 산물로 그간의 군사비의 과대한 지출로 엉망이 된 사회주의 체제, 통일이 어떤 식이든 BRD가 옛 DDR의 재건설을 위해서 막대한 통일비용을 쏟아 붓듯이 대한민국 역시 BRD와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것 등 너무 유사한 점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에는 신탁회사 (Treuhand)보다 수백배의 위력(?)을 가진 메가톤 급의 정예 "복부인 福婦人" 수 천명이 손꼽아 통일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 그라스는 통일 뒤에 일어난 모든 부정적인 문제들을 걱정스럽게 『광야』란 소설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라스가 독일 통일을 해부한 소설 『광야』가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한민족의 얘기로 이해해 볼 수 있다고 본다.

한민족 통일이 금세기에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독일 통일과 그라스의 소설 『광야』는 한민족 통일 전·후의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고 배울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본다. 한민족 각자각자는 반통일이든 찬통일이든간에 통일에 관한 제나름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또 통일이 부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든 없든, 통일된 한반도에 살기를 원하는 것은 한민족 각자의 바람이리라 믿는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 손잡고 목놓아 울며, 지난 50년의 한이라도 풀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한민족 각자의 도리가 아닐까?

남북통일이 단순한 소원이요, 꿈의 차원이 아니라, 한민족이 어떤 평화적인 댓가를 치루고라도 이뤄야 할 현실로서 이제 우리 한민족 앞에 우뚝 서있다. 그렇기에 독일 통일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풀어내는 "지혜로운 한민족의 통일"을 꼭 이뤄야 하겠다. 그라스 소설 『광야』에서 이런 지혜를 찾을 수 있다면, 귄터 그라스의 깊은 뜻이 한국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된다고 보면 지나친 억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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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58년 47 그룹 모임의 낭독을 통해 47그룹 수상자로 뽑힘으로써 그라스를 일약 유명한 전후 독일 작가로서 입신하게 만들었던 『양철북 Die Blechtrommel』(1959) 이후 계속해서 집필한 『고양이와 쥐 Katze und Maus』(1961), 『개들의 시절 Hundejahre』(1963), 『국부마취 Örtlich beträubt(1969), 『넙치 Der Butt』(1977), 『텔그테에서의 모임 Das Treffen in Telgte』(1979), 『Rättin』(1986)등의 소설이 있고, 브레히트의 정치적인 소신이 무력하고 비겁함을 시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비판한 『민중들 반란 연습을 하다. Die Plebejer proben den Aufstand』(1966)을 위시해서 다수의 희곡작품이 있다. 



(재독한인회보, 1995년 11월 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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