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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시 - 살아남은 자의 분노

2020년 11월 22일 업데이트됨

- 동지들 죽음 앞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단순 번역되기엔 너무나 무거운 시



살아남은 자의 분노


나는 물론 안다. 유일하게 행운으로 난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음을. 그런데 간밤 꿈에서 나에 대해 이 친구들이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걸 들었고 난 내 자신을 증오했었지.

Ich, der Überlebende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GBA 12, 125.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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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소개하는 위의 시는 브레히트 시 중에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에 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김광규 시인이 처음으로 브레히트 번역 시집을 내면서 시의 제목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번역하고 시집 이름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붙여 가장 많이 인용되거나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시의 제목은 독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나, 살아남은 자 Ich, der Überlebende"이다. 그런데, 김광규 시인이 번역하면서 국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제목 "나, 살아남은 자"를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번역함으로써, 시적 자아의 심리적 상태를 "슬픔"이란 단어, 즉 보다 감성적이고 소극적이고도 가벼운 시어로 번역해 국내 독자들에게 전달했었다. 

    시는 물론, 시적 자아의 원래 의미 못지않게 역자나 독자에게 감상이나 해설적 자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것이 또한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의 고유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 네 줄의 시에서, 엄청난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브레히트 시 777선 번역 프로젝트"에서는 위의 시를 굳이 "살아남은 자의 분노"란 제목으로 "시적 자아"와 "시 생성 배경"을 감안해서 국내에 새롭게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다.

    위의 시는 이제까지 국내에서 알려진 것과는 달리 1944년이 아닌, 1942년 4-5월 경에 쓴 시다. 즉, 브레히트가 산타모니카 안락한 집에 정착한 시기이자 스테핀 Margarete Steffin이 죽은 지 일년 뒤에 쓴 시이다. 이미 앞에서 번역 소개한 것처럼, 모스크바 결핵 병동에 스테핀을 남겨둔 채로 히틀러와 촌각을 다투며 도주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1941년 6월 4일에 스테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미국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도 브레히트는 스테핀의 죽음과 관련된 시를 6편이나 썼었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1942년 6월 4일자 작업일지에 "스테핀 죽은 날"로만 남긴 것과는 달리, 6월 30일자에는 다음과 같이 '스테핀의 죽음'에 대해 강조하여 다시 언급하고 있다.


스테핀의 사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난 일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 일, 도대체 이게 무엇을 위해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이 죽음의 끈에 아직도 연결되어져야만 할 수많은 결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스테핀을 죽였다 그리고 배고픔이. 히틀러는 아직 여전히 살아있고, 배고픔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녀를 구하고자 한 시도에서 난 패배했었고, 스테핀을 편안하게 할 능력을 난 가지지 못했었다. 성공한 일을 잊어도 되지만, 실패한 일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GBA 27, 110)

    이미 브레히트가 "사상자 명단 Die Verlustliste" (GBA 15, 43)이란 시에서 나열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 실제로 먼저 간 친구는 벤야민 Walter Bejamin과 스테핀 Margarete Steffin뿐이다. 브레히트는 시에서 '비평가 벤야민은 어디에 있는가? 벤야민은 스페인 국경에서 단념했었다"라고 애석하게 여겼었고, "히틀러 권력 앞에서 도피 중에 자살한 발터 벤야민을 생각하며 An Walter Benjamin, der sich auf der Flucht vor Hitler entleibte" (GBA 15, 41)와 "망명자 W.B.의 자살에 대해 Zum Freitod des Flüchtlings W.B." (GBA 14, 48)란 두 편의 시를 따로 남기고 있다.

    하지만, 위의 시처럼 일년이 지난 뒤 낙원과도 같은 산타모니카까지 찾아가 '간밤 꿈에 나타난 친구"는 과연 누구일까?! 브레히트가 시에서 굳이 복수형으로 시어 "그 많은 친구들 so viele Freunde"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스테핀 사후 1년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때 의심할 것도 없이 꿈에 나타난 친구는 스테핀일 것이며, 시에서 주체가 되는 친구는 당연 스테핀으로 보는 것은 그리 무리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작업일지와 연관시켜 위의 시를 다시 살펴보면, 네 줄의 시에서 나타나는 것은 히틀러 전쟁에서 살아남은 시인 브레히트가 히틀러처럼 졸지에 "강한 자"에 속해버린 "자기 자신에게 '행운으로 살아남은 사실'에 대해 '분노'하며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결코 '스테핀의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거나 극복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결코 '잊어서는 안될 사건'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감성적인 "슬픔"의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스테핀을 죽음으로 내몰고서도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살아있는 히틀러'와 '전 세계에서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는 굶주림" 앞에서 실패한 일을 결코 잊지않고 기억함으로써 히틀러에 맞서는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위의 시에서 시적 자아인 자신까지도 증오스러운 "의연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김광규 시인의 번역에서는 "슬픔"이 강조되는 반면에, 이러한 시적 자아의 "분노심"을 "자신이 미워졌다"는 번역으로 원래 짧은 시적 의미를 최대한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독어 'hassen'은 '미워하다, 증오심을 가지다, 싫어하다, 혐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짧은 이 4행시에서 이 시어를 가지고 '과연 단순히 자신을 미워한 것에만 머문 것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의심하여 재해석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김광규 시인은 물론, 국내 최초의 브레히트 번역시를 내면서 "번역된 시 47편은 맛보기 한 숟갈에 지나지 않지만, 시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고정관념을 고쳐주고, 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역자의 의도대로 한국 시인들에게 시에 대한 인식을 바꿨고, 혹자는 "브레히트 문학이 국내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했다"고까지 말한다. 

     올해로 브레히트 문학이 (김광규 시인이 브레히트 시를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된 지 30년째가 되는 해이다. 47편의 시가 마치 브레히트의 모든 시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난 30년간 브레히트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조차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를 인용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고 겪은 세대들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독약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졸지에 어설프게 맞이한 민주주의 앞에서 원인없이 기뻐하고 감격하며 심지어 자부심까지 가졌던 반면에, 불의와 폭력 앞에 마땅히 가져야 할 "의연한 분노"를 아예 상실해버렸던 지난 30년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는 오늘에 와서야 엄청난 댓가를 뼈저리게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브레히트에게서 시어 "살아남은 자"는 아주 무겁게 사용하는 어휘 중에 하나다. 왜냐하면, 이미 한번 소개한 바가 있듯이 브레히트가 오랜 생각 끝에 "후세대들에게 An die Nachgeborenen" (GBA 12, 85 ff.)"란 시 제목을 원래의 "살아남은 자들에게"가 아닌 "후세대들에게"라고 신중하게 바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란 시어는 BCI2000로 서치해 보면 284539 단어, 28436개의 상이한 시어로 쓴 브레히트 전체 시에서 이 시어는 총 13번 (동사로는 10번, 명사로 1번 "살아남은 자" (GBA 12, 125), 형용사로 2번 "살아남은" (GBA 14, 226; 14. 301)만 사용했었다. 명사형으로 쓰인 단 한번의 시어가 바로 한국에서 수없이 인용되는 브레히트의 시 "나, 살아남은 자 Ich, der Überlebende" (1942년)란 시이다.

     흔히 가볍게 "슬픔"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이해할 수도 있는 장면을 우리는 오늘 시와 함께 삽화로 소개된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접하게 된다. 30년 전쟁에서 지키고자 했던 자식들을 모두 잃고난 뒤에 혼자 살아남은 억척 어멈이 "내가 혼자 수레를 끌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 거야, 그리 많이 들어있지도 않는 걸"이라 말하고 수레를 혼자 끌고 계속 가는 독백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전쟁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의 "의연한 분노"이다.

    여기에서 억척 어멈의 마음은 전쟁 끝에 홀로 살아남은 자신이 처한 '슬픔'이 아니라, 작가 브레히트가 '살아남은 자" 그리고 "막 사막에 들어가면서 안내자를 빼앗긴 자"로서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그것도 "미리 간 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계속 싸워야만 하는 "자기 자신에게 가지는 증오심"이자 동시에 도발자이자 학살자인 히틀러에게 가지는 "의연한 분노심"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위의 시 제목은 더 이상 나약한 시어 "슬픔"이 아닌 "증오심" 내지 "분노"로 다르게 이해되고 읽혀져야 할 것이다. 히틀러와 같은 포악한 무리들 앞에 사용된 시어 "슬픔"은 너무나 가볍고 사치스러우며 지극히 "나약한 시어"를 번역어로 선택한 것이라 보아야 겠다. 물론 억압과 폭정에 맞선 작가 브레히트의 투지가 번역자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시에서 원래 추구한 의도는 최소한 감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의 이런 '의연한 증오심'은 결국 칠쟁이 히틀러가 무모한 전쟁에서 결코 '승리자'로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는 결론을 맺었다. 그 결과로 베를린에서 불태워졌던 브레히트의 문학은 다시 읽혀지게 되었으며 베를린 한복판에서 "억척 어멈"의 수레가 끝없이 굴러가며 그 소식이 마침내 한국 독자들에게까지 "슬픔"이 아닌 "의연한 분노"의 승리로 오늘 지금 이렇게 다시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번역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슬픔"이란 언어로 국내 독자들의 마음을 모두 잠식한 뒤에, 최근에 "한국 브레히트 학회"에서 오랜 번역 과정을 통해 다시 "브레히트 시선" 2권을 국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이 시선에서도 시인 브레히트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슬픔"이라는 나약하고 비겁하기까지 한 시어가 다시 선택되었다면, 브레히트의 "의연한 분노"는 불의 앞에 싸울 의지를 상실한 시로서 국내 독자들에게 "의연한 분노"를 앗아가는 독약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이 독약을 현대 한국인들은 "의연한 분노"를 앗긴 세대로, 부모된 자들로서 "가만 있으라!"는 명령에 자식을 잃고서 여전히 단지 슬퍼하는 존재로만 다시금 피부로 체험해야 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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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를 번역해서 올리고 난 뒤에, 브레히트 학회에서 펴낸 시가 시판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늘 새벽 (2015년 1월 28일)에 그 번역시가 스마트 폰에 찍혀 시베리아를 건너 독일로 달려왔다.



   우려했던대로, 브레히트 학회에서 최근 번역해서 펴낸 같은 시도 "김광규" 시인의 "슬픔"이라고 번역 소개한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살아남은 나"로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비교할 때, 브레히트 학회의 번역은 "지극히 그리고 너무나도" 독어 원문에 충실한 나머지 "오늘 밤 heute nacht"까지도 독어 원문에 따라 그대로 한국말로 옮기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0시부터 6시까지 밤도 독어식 표현은 'heute nacht", 즉 '오늘 밤'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오늘 밤"은 "오늘 아침"과는 달리 다가올 미래 시간의 표현이다. 김광규 시인의 번역 "간밤"이 적절하다고 보겠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시 4줄에 과거형 표현 전체가 비논리적이 되기 때문이다.

    김광규 시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지난 30년간 국내 독자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브레히트 학회가 이 시만은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는 소극성보다는, 작가 브레히트의 의중에 따라 좀더 적극성을 더해 "슬픔"을 상쇄할 만한, 다른 '강한 표현'으로 번역했었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을 필자의 시뒤집기 "미리 가는 자의 기쁨"으로 마감하고자 한다. 



미리 가는 자의 기쁨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명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미리 떠나간다. 그런데 비상하는 나를 향해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약한 자는 미리 간다!" 그러나 미리 가는 내 자신은 결코 외롭지 않네.

(2009년 5월 26일, 무현님 편히 가소서!)


산타 모니카에서 브레히트 (1942년)

(2015년 새해 아침에 - 이 시는 "브레히트 시, 777선 번역 프로젝트" 중에 하나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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